 빈곤사회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페연대, 민주노총 등 170여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역사 안에서 농성을 벌인 지 이제 5년이 돼 간다. 2012년 8월 21일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도는 장애인과 빈곤층의 생존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농성장 맞은편에는 농성을 시작한 이후 사망한 장애인들의 영정 사진을 걸어놓았다. |김영민 기자 “무관심,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관심이 가장 힘들어요.”
20일 오전 서울 광화문지하역사 2층에서 해치광장으로 올라가는 9번 출입구 바로 왼편에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장애인수용시설 폐지’를 촉구하는 농성장이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228개 장애인인권·시민단체 주최로 2012년 8월 시작된 이 농성은 21일이면 만 5년째를 맞는다.
■장애인 광화문 농성 5년째
장애인들은 이곳에서 장애인 인권 보장을 주장하며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시민 서명도 받고 있다. 주말 광화문을 찾은 인파가 쉴새 없이 오고갔지만 발길을 농성장에서 발길을 멈추는 이는 드물었다. 오전부터 낮 12시30분까지 서명에 참여한 시민은 6명에 불과했다.
그러다 오후 1시쯤 딸 넷을 데리고 광화문을 찾은 주부 모소영씨(38)가 농성장 앞 책상으로 다가왔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모씨는 책상 위에 놓인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안내 자료를 꼼꼼히 읽은 뒤 서명을 했다. 모씨는 “1년에 2번 정도 이 앞을 지나가는데 왜 지금껏 농성장을 보지 못했는지 모르겠다”며 “5년째 여기 있었다는 얘기에 소름이 돋았다”고 말했다.
농성장을 지킨 이태규 강동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41)은 5년째 농성에 참가하고 있다. 뇌병변 2급 장애인은 이 소장은 “서명을 부탁한다는 말을 외칠 수 없어 답답하다”고 했다.
농성장 맞은편에는 2014년 장애 3급이라는 이유로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못해 눈앞의 불길을 피하지 못하고 사망한 송국현씨 등 13명의 영정사진이 놓였다. 5년 전 처음 농성을 시작할 때는 이곳에 영정 사진이 없었다. 두 딸과 함께 지나던 한 남성은 영정사진 앞에 걸음을 멈춘 아이들에게 “몰라도 되는 것”이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빈곤사회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페연대, 민주노총 등 170여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역사 안에서 농성을 벌인 지 이제 5년이 돼 간다. 2012년 8월 21일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도는 장애인과 빈곤층의 생존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농성장 맞은편에는 농성을 시작한 이후 사망한 장애인들의 영정 사진을 걸어놓았다. |김영민 기자 이 소장은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등 장애인 복지 정책 문제가 이슈가 될 때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금세 잊었다”면서 “사람들의 무관심이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부모와 함께 지나가는 아이들이 부모에게 농성장을 가리키며 ‘이거 뭐야?’라고 묻지만 부모들은 대답을 못한다”면서 “언론에 보도도 잘 안되고 실질적인 정보를 얻을 곳이 적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농성장의 장애인들은 행인들에게 욕설을 듣거나 오물을 맞는 등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지난 3월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반대 집회에 나온 이들 가운데 일부가 농성 중인 장애인들에게 “빨갱이 XX들아, 세월호 리본은 왜 붙이고 있냐” 등 막말을 했다.
올해 초 농성장 텐트를 둘러싸고 있던 ‘박근혜는 물러가라’고 적힌 현수막은 사라지고, ‘문재인 대통령님! 3대 적폐 폐지 약속 지켜주십시오!’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들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장애인수용시설을 ‘3대 적폐’로 꼽는다. 이 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3대 적폐 폐지를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면서 “문재인 대통령도 3대 적폐 폐지를 약속했지만 아직까진 미온적인 것 같아 답답하다”고 했다.
이 소장은 특히 장애인수용시설은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설 안에서 벌어지는 반인권적인 행태들로 인해 이름 모르게 죽어가는 장애인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인권위, 중증·정신장애인 수용시설 실태 조사 착수
국가인권위원회는 중증·정신 장애인 수용시설에 대한 실태조사에 들어갔다고 20일 밝혔다. 지난 7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 3개 기관은 인권위로부터 실태조사 용역업무를 맡아 진행 중이다.
중증장애인 시설은 장애 1~2급 장애인을, 정신요양시설은 만성적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다. 실태조사는 전국 233개 중증장애인 시설 중 40개소, 59개 정신요양시설 중 35개소를 선정해 개별 면담 및 설문조사 방식으로 진행된다.
인권위 관계자는 “중증장애, 정신요양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은 시설종사자에 의한 인권침해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인권침해 발생 시 대처가 매우 어렵다”라며 “이들에 대한 치료와 보호가 적절한 환경과 절차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지, 인권침해가 없는지 등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실태조사는 최근 장애인권운동단체들이 ‘장애인들이 시설 밖에서 일반인들과 함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탈시설’을 요구한 것이 계기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인권위가 중증·정신 장애인 수용시설만을 집중해 실태조사를 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 때문에 장애인권운동단체들 사이에선 이번 실태조사가 문재인 정부의 ‘장애인 탈시설’ 정책 수립을 위한 자료로 활용되지 않겠냐는 기대감도 있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에 ‘탈시설 등 지역사회 정착 환경 조성’ 항목을 포함시켰다. 이번 인권위 실태조사 대상인 중증장애인 시설과 정신요양시설은 탈시설 논의의 주요 표적으로 지목돼 오기도 했다. 실태조사를 수행하는 단체도 장애인들의 자립과 탈시설을 주장해 온 곳이다.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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